일상메모/가족일기

인간은 변하지 않아(2013년 10월의 기억)

ㅅㅌㅅㅌ 2017. 7. 11. 00:38

주어진, 혹은 내가 택한 삶에 맞춰 살아가는거지.

늦은 집안일에 짜증내기보다

아프다는 아내 발을 위해 족욕물 받는 남편 고마워하기 신공을 시전하다니.

사람은 물론 변하지는 않아도 서로 기대고 맞춰가며 살아갈 수는 있다.


 

2013/10/3 10시 30분 경

"아으... 밤 늦게 안 먹는게 제일 좋은디"

그냥 자면 안되냐고 사정하다가 한 젓가락만 먹겠다고 일어난 그가 짜파구리를 다 먹은 후에 만족스러운 목소리로 친 대사 한마디.

남편의 저녁 식사를 배려해 같이 먹어주겠다고 한 짜파구리를 끓이고 있자니 그 자리에서 잠들어 버린다. 완성 직전 결국 방에 들어가 실신한 그를, 짜파구리의 특성상 혼자 먹을 수 없는 양이므로 깨워 나온 무정한 남편.(바로 나ㅋㅋ) 결국 나와 비슷하게 먹어치운 짜파구리의 냄비 앞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 것이다.


안 그래도 제 한몸 쁘라스(+) 장난만 가득 넘치는 남편을 만나 피곤한 인생에 주어진 행복 덩어리(?) 건희를 만나 피곤한 그를 깨워 짜파구리를 먹자니 마사지라도 해줄까 하다가...

그가 원하는 건, 아니 그에게 정말 필요한 건 마사지도 아니고, 먹고 싶어하던 짜파구리, 삽겹살도 아니라 저 설겆이 거리의 증발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마음 깊은 곳 한구석을 스치고 지나갔다.


요즘 개도 하고 소도 한다는 가사분담이 직장인, 엄마, 딸, 며느리, 친구 등등의 다중신분인 그에게 가장 필요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놀라운 추리력!! 


그럼에도 불구. 정말 이 정도면 나는 불구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결국 그 설겆이는 그가 해치워버리고, 나는 다음 날 먹은 아침 설겆이를 해버리고 말았다.(그나마도 재량휴업으로 출근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 원래 느긋한 일처리를 천성인 줄 알고 있는 나는 대신 잊어버리지 않고 오늘 점심 설겆이를 지금 조용히 해치워버렸다. 점심엔 세 가족 모두가 건희의 생애 첫 콘서트 참가를 위해 급하게 외출을 했으니까 뒤늦게 ㅋㅋ


놀라운 추리력 + 조금 더 신속한 일처리를 해야하는 그의 남편 1호의 짧은(?) 다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