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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귀하지만 더불어 함께. 작지만 올곧게.


棲守道德者   寂寞一時   (서수도덕자   적막일시)
依阿權勢者   凄凉萬古   (의아권세자   처량만고)
達人   (달인)
觀物外之物   思身後之身   (관물외지물   사신후지신)

寧受一時之寂寞   毋取萬古之凄凉   (녕수일시지적막   무취만고지처량)


도덕을 지키며 사는 사람은 한때 적막할 수 있다.

허나 권세에 의지하고 아부하는 사람은 만고에 처량하다.

통달한 사람은

물밖의 물을 보며 몸의 나중에 오는 몸을 생각한다.

한때의 적막함을 보낼지언정 만고의 처량함을 취하지 말아라.



도덕이란 무엇인지 그 실체가 자못 궁금하다.


한때라면 과연 어느 정도의 한때이며 만고라면 과연 어느 정도의 만고인가. 백년도 못살면서 천년을 걱정한다고 노래한 누군가의 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의아권세자 처량만고라...

그래서 사람들은 권세에 의지하고 아부하는 것이 아니라 권세 그 자체가 되고 싶어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하면 만고에 영화로울지니... 이름없이 사라져 간 역사속 인물들이 한 둘이 아닐진데...


(잘 살아야지 하며 글을 쓰기 시작했으나 곱씹을수록 저 말이 그리 곱게만 보이지 않는군.

역시 글이든 뭐든 그냥 보고 읽을 때가 아니라 생각하고 실행해볼 때 내 것이 됨을 깨닫는다.

본능적일 수 있는 키스도 글로 배우면 안된다고 하는데 ㅡㅡ;;

그래도... 분명 글로라도 배우고 하면 좀 낫지 않을까. 기준이 생기잖아.)


하물며 우리 유전자조차 이기적이라고 하는데 과연 도덕이라는 것의 실체를 알고 싶기도 하다.

영원불멸한 도덕이라는 것이 있기는 한 것인가.

변화하고 움직이는 것이 자연의 순리라고 한다면 이 말들조차 참으로 처량한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부딪-히는- 파-도 소-리- 자암을 깨우니-

들려-오오는 노- 소리- 처량도 하-구나-


그래도 어쩌랴. 뱃놀이는 하고 볼 일.


사람이 살면은 백년을 사나요

덧없어라 인생살이 한도 많구나


낙조 청가에 배를 띄우니

술렁술렁 노 저어라 달구경 갈거나


덧없어도 한이 넘쳐나도, 배 띄우고 술렁술렁 노 저으며 달구경 하며 살아야지.

뜬금없이 뱃노래가 마음을 울린다.


내가 권세에 아부하지 않고 의지하지 않고 살고 싶은 이유는 처량하지 않기 위해서도 아니고 죽은 뒤에 이름을 날리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래도 기왕 소중하고 존중받아야 하는 존재로 세상에 났으니 자존감은 지키고 살아야하지 않겠나... 그리고 다른 존재들도 자존감 지키고 살 수 있게 해줘야 하지 않겠나... 그게 인간답게, 소중한 존재답게 사는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나는...

잘은 몰라도 롤즈의 '무지의 장막'이 참 마음에 든다. 더 훌륭하고 소중한 존재가 아닌 서로 평등한 존재를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무지의 장막의 표면적인 논리를 통해 내게 드는 생각일 뿐 실제 그의 사상과는 무관할지도 모르지만.)


운은 엄청 거창하게 띄워놓고 후반은 완전 엉터리인 한국형 저서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내게 남긴 거의 유일한 의미는 바로 롤즈의 무지의 장막을 내게 알려줬다는 것. 방학 때 빌린 『정의론』은 과연 언제 볼 수 있을까... ㅜㅠ


권세가 아니라도, 경제력이 아니라도, 거창한 군자나 성인이 아니라도 우리 모두 고귀함을 기억하길...


고귀하지만 더불어 함께.

작지만 올곧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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