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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산 것만 이만큼

  신중한답시고 조금 더 깊고 넓게 보고 싶다고 저 먼 곳의 기초작업과 생각만 난무한지 벌써 며칠째인지 모르겠다. 새로 산 책만도 저만큼인데... 막무가내로 적당한 기일에 맞춘 계획대로라면 목차는 이미 다 됐고 벌써 60쪽 정도는 썼어야하는데... 생각만 하고 자료만 모으고 있다니... 떠올랐다가 사라진 생각이 얼마더냐... 어차피 한번에 써질 것이 아닐것을...

  오늘도 육아를 은근히 내팽개치고 한 것이라고는 되지도 않는 뇌과학 영어 논문을 번역기 돌려가며 껍데기를 파악하다가 한국 논문부터 돌아볼까 하면서 찾아헤멘 것이 전부. 그러나... 한국어로 된 뇌과학 논문은 찾기가 어려운데다 특히 읽기와 관련된 논문을 찾기가 어렵다. 한참을 헤맨 후 내리게 되는 결론은... 역시 책에서 시작하는 것이 옳다. 책을 찾지 못하면야 논문에서 시작할 수도 있겠지만 읽기의 과학에 관한 보석같은 책을 이미 3권이나 확보했고 다른 1권의 책은 예약을 걸어놓은 상태다. 물론 최종적으로는 구입할 것 같지만 우선 대출로 내용을 점검해볼 생각이다. 시작은 조금 되었지만 작업 일기라는 걸 매일 적어볼 생각이다. 이걸 쓰기로 생각한 것도 조금 되긴 했지만... 지금이라도 시작. 엄청 간략하게나마 지금까지의 생각을 정리해보자.

1. 왜 책읽기인가?

미독난무(읽지도 않은 책들만-만화책 빼고- 흩뿌려져 있도다)

  나는 책이 참 좋다. 읽은 양을 떠나 책읽기에 대한 내 애정은 한결같다. 조금씩 받은 용돈 모아모아 책 두어권 살 정도가 되면, 주머니에 돈을 챙겨넣고 걸어서 30분은 걸리는 시장 서점 귀퉁이 어린이 코너를 차지했다. 1-2시간 동안 꼬박 걸려 책을 고르고 골라 한 권씩 한 권씩 사모았던 초등학교(나는 물론 국민학교를 나왔다... ㅜㅠ) 시절부터 지금까지. 벌써 30년은 됐는데 그동안 나는 책을 왜 이렇게 적게 읽었지? 라는 자괴감도 들지만 책을 들고다니는 것만큼은 '언제나 열심'이었다고 자부한다. 고전 읽기라는 건 그다지 많이 못해봤지만 읽고야 말겠다고 생각하고 한 두번 모임을 만들어 도전도 해봤다.

  안 좋은 이야기부터 정리를 시작하는 게 별로이기는 하나 어쩔 수 없다. "왜?"라는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 빠지기 어려운 지점이기 때문이다. "책읽기에 관한 책"이라는 건 이미 무진장 쏟아져 나와있는 분야다. 그리고... 무진장 비슷한 책들이 난무하는 분야다. 대부분 책의 내용은 한결같다 할만큼 비슷하다. 물론 몇 가지 분류가 가능하기는 하다. 그러나... 논리의 전개 과정은 대체로 이런 식이다.


책읽기에 관한 많은 책들의 논리

  • 우리가 아는 천재들이 책을 많이 읽었다

  • 천재들이 책을 많이 읽어서 도움이 됐다고 한다

  • 책을 읽으면 모두가 천재가 될 수 있다


  아아... 이런 책을 보고 있자면 과연 책을 읽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회의감이 든다. 천재 대신 몸값이니 자기계발이니 하는 말로 적당히 대체하면 저 논리는 거의 모든 책에서 한결같이 벌어지는 논리다. 아주 쉽게 생각해봐도... 천재라 많이 읽은 것인지 많이 읽어서 천재가 된 것인지... 이상하지 않나? 내가 지금까지 책을 읽지 않은 이유. 물론 나는 책을 읽으면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 논리에는 도저히 손을 들어줄 수가 없다. 책을 수백수천권을 읽고 고전을 그렇게 읽고 나서 저런 무지막지한 논리가 생긴다면... 차라리 책을 읽지 말고 다른 걸 하는 게 훨씬 낫겠다는 생각이 드는 지점이다. 그 '출판물'들의 논리대로면 독서의 결과가 바로 그들의 '무지막지한 논리'일 테니까.

  더 암담한 것은 '독백'이나 '교리'와 같은 느낌의 그 '출판물'들이 처세나 독서법 분야에서 베스트셀러를 꾸준히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반대로... 다양하고 깊은 사유나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씌여진 '책'들은 시간이 조금 지나면서 절판되거나 찾아보기 어렵게 되는 걸 보고 있자면 그런 '출판물'들이 독서의 양과 질을 오히려 낮추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게 한다. 이는 개인적인 경험으로 볼 때(물론 책의 종류와 고르는 기준 및 독자층은 다양한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그 편향이 너무 심하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독서법 분야만이 아니라 대다수 분야의, 대부분의 책들이 겪는 일이다. 다행스럽게도 더디게 읽혀도 좋은 책들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런지 절판된 양서들은 중고 시장에서 원래 책값보다 몇 배의 가격으로 거래된다.(솔직히 양서가 따로 있겠냐는 생각이지만 위의 책들은 조금 심하다고 생각한다...) 신경외과 전문의 프랭크 T. 버토식주니어가 쓴 <사로잡힌 몸>(2005)은 여러번 찍히지 못하고 절판된 후 상태가 괜찮은 중고는 판매가가 4만원 후반대까지 올라가 있는 상태다. 책모임에서 구매하려고 할 때 출판사에 직접 전화해서 온라인에 잡히지 않고 창고에 은둔해 있는 걸 끄집어내 몇 권을 정가에 구매하는 행운을 겪는 것도 나름 쏠쏠한 기쁨이기는 하지만... 알라딘에서 이 와중에 "품절센터 의뢰하기" 서비스가 생긴 것은 좋은 책을 구해볼 수 있다는 면에서 기쁘지만 좋은 책을 사람들이 찾지 않는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 씁쓸함이 따라붙는다.

  반면 그 '출판물'들이 베스트셀러니 브랜드이미지 1위니 뭐니 하고 있는 걸 보고 있자면 마치 거울에 비친 허상이 세상 위로 솟구치고 실존하는 물체는 거울 속 허상의 세계로 가라앉아버린 듯한 느낌이다. 우리가 무엇을 추구하며 살고 있는건지, 책이 사람을 만드는지 사람이 책을 만드는지 진실은 모르겠으나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책이 일방적으로 사람을 만드는 것도 아닐 것이고 꼭 천재가 되자고 책을 읽는 건 아니리라.

  한편 이렇게 무지막지한 논리를 앞세우는 그 '출판물'들이 담고 있는 또 다른 논리는 다음과 같다.


책읽기에 관한 많은 책들의 추가 논리

  • 나는 책을 안 읽었었고, (이유가 뭐든) 힘들었다.

  • 책을 몰아서 엄청 읽었다

  • 내가 변했다!!!!(이 부분에 꼭 들어가는 것 중의 하나가 '책을 썼다'이다.)

  • 너도 성공할거야 따라해


  대개 그 '출판물'들의 첫 번째가 이런 식이고 두번쨰부터는 하나가 더 붙는다. 앞선 책의 성과나 경험담. 사정이 이렇다보니 대략 이 책들은 '독백'이나 '교리'에 가까운 것으로 끝나게 된다. 나름대로 흐름을 갖춘 듯한 목차가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출판물'들에 인용되는 내용들은 대부분의 책이 비슷한 내용이며 서로(심지어 자기 표절까지) 베낀 것 아닌가 할 정도로 제시하는 배치나 약간의 손질이 있을 뿐 거기서 거기다. 사실여부야 법적으로 결정되기 전에는 함부로 말할 일은 아니나 한창 표절 논란이 있는 소위 유명 작가나 멘토들의 표절은 표절을 넘어 윤리적 문제까지 거론하는 정도이고 개인적인 경험을 합쳐 보면 표절에 대한 생각이 아주 허무맹랑한 일은 아니지 않나 생각해본다.

  그러면 이제... 왜 책읽기냐? 라는 물음으로 돌아갈 때다. 가장 주요한 이유는... 책을 쓰게 된 과정에서 '책'이 주제로 지정되었기 때문. 인생 뭐 이런거다. 하하하...;; 그 외에 이유를 꼽아보자면...


책읽기에 관한 책을 작업하는 이유

  • 문자가 인간에게만 허용되었다는데 그 이유가 있지 않을까

  • 개인에게도 사회에게도 '자기 생각'을 갖춘 사람이 필요하다

  • 우리에게는 실패의 문화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실패했을 때 가장 타격이 적은 것 중 하나가 책읽기 아닌가(운동은 다쳐...)

  • 요즘 시대는 내가 '고르고', '생각할' 기회가 있는 자극이 별로 없다


세상에 의미있는 건 베스트셀러만이 아니다

  많이 팔리는 책은 많이 가져다 놓는다. 맞다. 그래야 읽고 싶은 사람들이 사서 읽을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 가득 채우고 있을 필요까지 있을까. 구하고 싶은 책이 서울 시내 한복판 그 큰 서점에도 없어 발길을 돌리면서 이런 장면을 보게 되면 조금 힘이 빠진다. 마치 "이걸 읽지 않는 건 세상을 외면하는거야. 이건 지금 세상의 정답인데 외면할래?" 라고 외치는 듯하다. 그것이 왠지 모를 강요로 다가와서 그런지 서문과 목차를 보고 왠만큼 괜찮다고 생각지 않으면 특히 문학과 자기계발서를 포함해 가벼운 감성팔이 인문학 베스트셀러는 잘 찾아보지 않는다.

정원에는 갖가지 존재들이 공존한다.

  정원에는 갖가지 존재들이 공존한다. 인공적으로 꾸며진 정원에서조차. 생명체인 새는 물론 조형물 새조차 자세히 보면 작은 배들이 모여 이뤄져 있기도 하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예쁜 건 책, 그리고 그 책을 읽어가는 한 사람람 모두 인 것 같다. 그리고 예뻐지는 과정이 또 중요한 것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정답'을 주려는 책이 아니라 '생각'을 전달하고 '결정'을 하는 과정에 관한 책도 필요하지 않을까. 책읽기에 관해 생각을 찾아가고 결정을 하는 과정을 담은 책. 사람의 생각과 삶의 여정은 제각각인데 책읽기의 방법이나 여정도 제각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는 다양해지고 민주주의가 발전한다고 하는데 이것만 맞다!!는 선언과 교리가 난무하는 책들 외에도 각자의 생각을 주장할 수 있는 민주주의적인 책도 필요하지 않을까. 라는게 내 생각이다. 그래서 그런 글을 엮어 책으로 만들어보고자 한다. 이제 시작인 여정이지만 과연 어떻게 일단락될지 모르겠다. 생각보다 길어진 글이니 오늘은 이만하고 내일은 왜 과학책인가에 대한 변을 늘어놔볼까나.


늘의

정답 내려는 거 아닌데 현재 시점에서 타협이 필요하다

우선 책으로 시작해서 가능한만큼 탐색하자

세기의 책 같은거 쓸 것도 아닌데 일단 진행은 해야지

막무가내 자료 모음은 못할 짓이다

 밥도 하고 청소도 하고 아들이랑도 좀 놀아야지 ㅜ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