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등함

추상적인 단어장

                                             최영미

 

조국을 위해

정의를 위해

사랑을 위해

아이를 위해

美를 위해

예술을 위해

자신을 위해

 

누구를 위해서 죽는 자들은 행운아

 

나도 무언가를 위해 봄날을 희생했으나

어리석은 봄이 가고

잔인한 여름을 보내고

가을의 문턱에서

그대들에게 이르노니,

어떤 죽음도 다른 죽음보다 크지 않다

 

                   - 『이미 뜨거운 것들』 중에서

 

대화의 기본 조건은 동등함이다.

 

책임, 나이, 지식, 지혜 등은 이후의 문제이다.

 

우리 모두는 동등하다.

 

명분과 가치로 치장한 죽음과 마찬가지로 조용하고 덧없는 죽음 또한 소중하다.

 

깊은 사유를 통한 의견과 마찬가지로 '나'로 점철된,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의견 또한 가치가 있다.

 

 

공동체에서 동등함이라는 속성은 형식이 동반되어야 하지만

 

결국 마음가짐의 문제로 귀결된다고 생각한다.

 

 

참으로 미묘한 이 문제를 누군가에게 설명하기란 아직 내게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지만...

 

의견의 동등함을 전제로 한 소통이 진행된 후에 책임, 결정권 등이 거론되기를 바라는 것은 나의 욕심이지만...

 

 

그 어려운 길을 가야한다. 내가.

 

그리고 지금 이 순간 힘을 가진 사람, 나이가 많은 사람, 책임이 더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가기 시작했으면 한다.

 

동등한 것은 죽음만이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아이들은 생각이

나보다는 자기 중심적이고

경험이 뒷받침되지 못한

느낌적인 느낌일 수도 있다.

아니기도 하지. 그러나 그런 것들과 무관하게.

나, 그 어떤 명사(名士)의 의견과도 동등하다.